“서촌은 지키는 것이 중요한 동네예요. 그래서 지구 단위 계획도 있고 심의를 통과해야 하지요. 도시계획의 틀을 유지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건물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컸어요. 오시는 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는 전망이에요. 가깝게는 서촌의 정겨운 골목과 주택가가, 저 멀리로는 인왕산이 보이거든요. SNS에도 사진을 많이 찍어 올리는데 즐거운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사진 제공 몰드 프로젝트, 스튜디오씨오엠, 무목적빌딩
사진 노경
오래된 동네에 어울리는 새 건물
무목적빌딩은 서촌의 필운대로라는 꽤 오래된 길에 서 있다. 작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이 빌딩으로 들어오고, 물 흐르듯 배회하게 된다는 뜻에서 ‘무목적’이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붙였다. 원래 이곳에는 가정용 LPG 저장소가 있었고, 뒤로는 서촌의 작은 골목이 이어졌다. 건축가가 노출 콘크리트로 외벽을 마감한 가장 큰 이유는 가정용 LPG 저장소 역시 콘크리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땅의 역사와 풍경을 가급적 이어가고 싶었다고. 건축가가 서촌에 2년 넘게 살았기 때문인지 동네의 정취를 해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일부러 두껍게 만든 콘크리트 외벽에 고압 살수 장치로 물을 쏘아 상처를 내는 치핑(chipping) 공법을 사용했다. 수압의 크기에 따라 벽면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났고, 심한 곳은 철근이 보일 정도다. 오래된 것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촌이란 마을에 어울리는 새 건물이 되었다. 그렇게 완공한 건물에 가구 매장, 갤러리, 편집매장, 카페 등이 사이좋게,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SNS에서 ‘서촌 핫플’로 유명한 매장들이 한자리에 있는 셈.
골목과 골목을 연결하는 빌딩
두 동으로 구성된 무목적빌딩은 내부도 미로 같은 게 특징. 이곳을 처음 방문해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따라 건물을 오르다 보면 벽, 테라스 등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마주친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은데 또 다른 출구로 이어지는, 배회하며 즐기는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건축가는 전한다. 특히 이 빌딩을 자주 방문한 사람도 모르는 길이 하나 숨어 있다. 바로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나오는 또 하나의 통로. 그곳에서 바깥으로 나가면 서촌의 오래된 중식당인 영화루가 있는 골목이 나온다. 빌딩을 가운데 두고 있는 이 골목과 저 골목을 연결하는 길을 만들어준 것. 이 새로운 경로를 통해 지역 상권에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무목적빌딩에 있는 카페, 인왕산 대충유원지. 인왕산 전망을 볼 수 있어 유명하다. 공간 디자인은 푸하하하프렌즈가, 가구 디자인은 스튜디오씨오엠이 맡았다.
사진 텍스처 온 텍스처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부럽지 않는 루프톱 전망
4층 카페에서 한 층 더 올라가면 나오는 옥상에서는 서촌의 주택가와 인왕산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많은 인왕산의 기개 넘치는 산세를 보면 ‘겸재 정선이 절로 붓을 들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은데, 이곳 역시 절로 사진을 찍게 되는 전망이다. 담백하게 완성한 조경도 볼거리. 무겁고 거친 콘크리트 질감과 대비되는 가볍고 부드러운 조경에서 건축가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지키는’ 건축가, 홍영애
한때 다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 능사인 시대가 있었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여러 건축가들의 생각과 목소리, 그리고 원래의 정취를 지켜낸 결과물이 하나씩 보여지면서 지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된 것이다. 몰드 프로젝트를 이끄는 홍영애 건축가 역시 지키는 건축을 한다. 그는 모든 건축물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치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골목 풍경을 지키는 동시에 섬세하고 치밀한 맞춤형 건축으로 불암골 행복발전소와 무목적빌딩을 포함해 상공간부터 주택까지 다양한 작업을 한다. 무목적빌딩으로 2019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HASHTAG
#서촌산책
#무목적빌딩
#서촌가볼만한곳
#서촌핫플
이 건축의 묘미!
+ 겉에서 보면 무덤덤하고 거칠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화사한 공간이 펼쳐지는 반전 매력
+ 노출 콘크리트와 심플한 조경의 조화
+ 길과 길을 연결하는 건축
Info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 46
전화 0507-1315-9075
홈페이지 www.instagram.com/mu.mokjeok
어쩌다 만나도 재미있는 곳, 어쩌다 가게
어쩌다 만나도 재미있는 곳, 어쩌다 가게
즐겁게 일하고 싶은 이들의 연대
이름부터 특이하고 재미있는 ‘어쩌다 가게’는 ‘임대 실험실’이라 할 만하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한 흰색 4층 건물로, 종류도 제각각인 상점과 사무실 15~16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건축사사무소 사이(SAAI)와 콘텐츠 회사인 공무점이 뜻을 합쳐 2014년 동교동에 첫 지점을 오픈했는데, 개성 있는 사람들과 콘텐츠가 속속 들어가고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다는 ‘특약 조건’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이곳에 들어간 상점과 사무실은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렸고, 어쩌다 들어가도 여전히 ‘살아 있는’ 가게들로 점점 동네의 명소가 되었다.
사진 제공 사이건축
사진 노경
산책하듯, 탐험하듯 둘러보는 공간
어쩌다 가게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공간들이 한곳에!”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콘텐츠가 훌륭한 곳이다. 입주 설명회를 통해 입주자를 선발하고 입주 공모도 SNS로 진행해 취향 특별하고 감각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그렇게 선발한 곳은 음식점부터 카페, 서점, 식물 숍까지 다양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대부분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될 정도. 앞으로 ‘어쩌다 동네’라는 프로젝트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브랜딩이나 마케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들이 어떻게 사람을 불러모으고,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브랜드를 키워나가는지 살피는 재미도 있을 듯하다. 2016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HASHTAG
#어쩌다가게
#어쩌다가게망원
#공간콘텐츠
#서울가볼만한곳
#공간프로그램
#망원동투어
이 건축의 묘미!
+ 건축주와 임대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생의 현장
+ 크고 작은 상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 착하고 따뜻한 아이디어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곳
Info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9길 74
전화 0507-1410-5627
서울숲 옆 컨테이너 숲, 언더스탠드에비뉴
서울숲 옆 컨테이너 숲, 언더스탠드에비뉴
알록달록 116개 컨테이너로 만든 마을
거칠고 획일적인 느낌이 나는 컨테이너도 충분히 신선한 건축 재료가 될 수 있다. 레고처럼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쌓아 올릴 수도 있고. 성수동에 있는 언더스탠드에비뉴에는 1~3 층 높이의 컨테이너 116개가 모여 있다. 120m 길이의 길에 다양한 컨테이너 박스가 도열하듯 서 있어 건축 실험실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알록달록 색을 입은 컨테이너가 많아 눈도 즐겁다. 컨테이너의 적극적인 활용은 세계적인 추세.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폐컨테이너를 상업 공간이나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건물을 새로 짓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냉난방부터 자유롭게 공간을 구획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 이곳 역시 카페, 음식점 등 다양한 상업 공간이 연대하듯 들어서 있으니 시간을 갖고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면 좋다.
사진 제공 아르콘, 건축사사무소 메타
‘공간 아이디어’도 좋아요.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설계한 이는 건축사사무소 메타의 우의정 대표와 이상진 소장. 주상 복합 건물 공사장 옆에 컨테이너를 적재해 비슷한 결을 맞추면서도 전혀 새로운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비교적 쉽게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언더스탠드에비뉴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파워스탠드, 예술가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전시·공연·강연·파티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아트스탠드 등 공간 콘텐츠로 다채롭다. 이런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2017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았다. 애초에 환경을 위해 폐컨테이너를 사용하려 했는데 안전 등의 이유로 새 컨테이너를 사용했다고. 바로 근처에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 중 하나인 서울숲이 있으니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안성맞춤. 2017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HASHTAG
#언더스탠드에비뉴
#서울숲
#컨테이너건물
#성수동명소
이 건축의 묘미!
+ 거칠고 딱딱한 컨테이너의 화사한 변신
+ 컨테이너를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
+ 컨테이너 숲을 걷는 듯한 기분
Info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63
전화 02-725-5526
홈페이지 www.understandavenue.com
1층을 비운 통 큰 건물, 가로골목
1층을 비운 통 큰 건물, 가로골목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착한 빌딩’
신사동 가로수길 주도로를 걷다 보면 만나는 이 건물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대로변에 접한 필지를 하나로 묶어 건물을 올렸는데 1층을 통으로 비워놨다. 그렇게 빈 공간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료 없이 지나다닌다. 아찔할 만큼 비싼 임대 수입을 포기하고 공공의 길로 만든 것. 건물 이름에 ‘골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곳은 작지만 경쟁력 있는 소규모 상점을 가벼운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계획했다. 2층부터 상가와 카페 등이 이어지고 5층 옥상도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다.
사진 제공 더시스템랩
사진 김용관
건축가 김찬중의 또 다른 실험작
건축가 김찬중은 매우 실험적인 설계로 유명하다. 네모반듯한 건물은 그의 포트폴리오에 없다. 건물 외관에 동그란 홀(hole)을 가득 붙이기도 하고, 활시위처럼 큰 아치를 그리는 건물이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이어지기도 한다. 이 건물 역시 한쪽 면이 엘리베이터처럼 경사를 이루며 완만하게 올라가 있는 형태로, 외벽에는 ‘골목’이라는 커다란 글씨만 붙어 있다. ‘지역 상생’을 위해서는 작은 가게들이 들어와야 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려면 임대료를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개발, 진행한 프로젝트다. 사이니지를 포함해 시각 디자인도 두루두루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