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로서 이 건축물을 재해석하고 싶은 욕구와 100년 된 건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많은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시간을 견딘 건물의 가치를 지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어요. 우리는 건축가 마인드와 고고학자 마인드를 동시에 갖추고 작업한 것 같아요.”
학생 윤동주가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던 공간
1922년 기숙사로 지은 핀슨관은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건물이다. 핀슨 박사가 기부해 지은 건물이라 핀슨관이라 이름 붙은 이곳에서 윤동주는 전국에서 온 다양한 배경·계층·전공의 학생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나눠 읽으며 교류했다. 100세를 맞이하는 이 건물은 윤동주 유족의 유품 기증과 동문 박은관 시몬느 회장의 후원으로 윤동주기념관 건립이라는 틀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이를 진행하기 위해 문과대학과 건축공학과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TF 팀이 꾸려졌다. 1층 전시실, 3층 윤동주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은 라이브러리, 3층 공연장, 이렇게 세 영역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특히 전시실에서는 윤동주가 남긴 육필 원고에서 출발해 공간 전체를 채운 다양한 작업물을 만날 수 있는데, 가까운 과거인 근현대 문화유산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기숙사라는 친밀한 공간
기숙사 건물이었던 곳이라 그런지 위엄과 화려함을 자랑하는 근대건축물과 달리 소박하고 담백한 형태인 것이 오히려 정겹고 친밀하다. 창이 지붕 경사면으로 튀어나온 도머창에서는 빨간 머리 앤이 창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오랫동안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이 건물은 인근 안산에서 채취한 운모편암으로 쌓은 외벽, 낮은 층고와 작은 방, 창문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해 당시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 3층의 석면 제거로 드러난 천장의 목재 구조에서 당시 건축 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 윤동주가 바라본 창밖 풍경을 짐작하면서 곳곳에 비치된 윤동주의 시집을 읽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니 놓치지 말 것.
사진 제공윤동주기념관
사진김용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 총출동한 프로젝트
기숙사의 공간 구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1층은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방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이었다. 창 쪽을 빙 돌도록 전시 동선을 유도해 공간을 한 바퀴 자연스레 순환하도록 설계했는데, 오래된 건물을 구석구석 섬세하게 매만진 이는 성주은·염상훈 연세대학교 건축과 교수. 윤동주라는 이름 아래 전시 기획, 영상, 디자인, 가구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총출동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의 합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이 공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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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
#윤동주기숙사
#윤동주
#시인의공간
#학교건축
이 건축의 묘미!
+ 윤동주가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 기숙사 공간
+ 다른 세상으로 진입한 듯한 분위기
+ 3층 도머창을 통해 보이는 창밖 풍경
Info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핀슨관
전화 0507-1487-2123
홈페이지 yoondongju.yonsei.ac.kr
대한제국의 역사가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
대한제국의 역사가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
러시아 건축가가 지은 고종의 거처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정동극장이 나온다. 그 사이 골목으로 쑥 들어가면 중명전이 조용히 숨어 있다. 예원학교와 주한미국대사관저 사이에 자리 잡은 중명전은 도심 한복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호젓하다. 원래 서양 선교사의 거주지였는데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을 확장하면서 궁궐에 포함시켰다. 황실 도서관으로 사용하다가 1901년 화재로 전소한 후 재건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이 되었다고.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로 삼면의 테라스와 다락방이 딸려 있다. 당시에는 아마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덕수궁 내에서 커피를 즐기던 곳으로 유명한 정관헌과 독립문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A.I Sabatin)의 작업이다.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재건해 외국인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06년 문화재청이 인수해 대한제국 당시 모습으로 복원했다.
사진 정연화
비운과 희망이 공존하는 역사 현장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1907년 강제 퇴위할 때까지 머문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장소이자, 이후 이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희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중명전 내부에 을사늑약 현장의 모습을 재현한 전시실과 헤이그 특사의 활약을 보여주는 전시실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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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산책
#근대덕후
#벽돌집
#역사현장
#러시아건축가
#대한제국
이 건축의 묘미!
+ 서울에서 보기 힘든 뻥 뚫린 하늘이 보이는 입지
+ 벽돌 건물에서 느껴지는 낭만. 그 앞은 포토 스폿
+ 회랑에서 바라본 옆 건물인 예원학교와 주한미국대사관저
Info
주소 서울 중구 정동길 41-11
전화 02-751-0734
홈페이지 www.deoksugung.go.kr
100년 전 수돗물 정수하던 곳,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100년 전 수돗물 정수하던 곳,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
수도박물관이 된 우리 상수도 역사의 출발점
우리가 언제부터 수돗물을 먹기 시작했을까? 그 답을 알려주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수도 생산 시설인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이다. 조선 말기인 1903년 고종이 미국인 헨리 콜브란(C.H. Collbran)과 해리 보스트윅(H.R. Bostwick)에게 상수도 부설 경영을 허가해 1908년 준공한 이곳에서 한국 최초로 수돗물을 생산해 공급했다. 특히 2008년 수도박물관으로 바뀐 송수실은 붉은 벽돌 구조, 화강석을 사용한 현관, 반원 아치형 창호 등 르네상스풍의 근대 건축물이다. 본래의 지붕 트러스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 시원한 공간감이 특징. 과거에 사용한 상수도 기기도 직접 볼 수 있다.
사진 제공 수도박물관
수돗물에 관한 모든 것
수도박물관은 현재 본관, 완속 여과지, 별관, 물과 환경 전시관, 야외 전시장, 야외 체험 시설, 뚝도아리수정수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완속 여과지는 이제는 실행하지 않는 방식이라 근대산업화 시기의 유산으로 가치가 높다. 옛날에는 식수를 정수하기 위해 오늘날처럼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고운 입자의 모래에 물을 통과시켜 불순물을 걸러냈다. 수도박물관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뚝도아리수정수센터에서는 한강물이 서울의 수돗물 아리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상수도 관련 문화와 기술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했는지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야외 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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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산책
#서울숲
#상수도역사
#벽돌집
이 건축의 묘미!
+ 근대산업 유산을 볼 수 있는 기회
+ 서울숲 바로 옆이라는 입지
+ 근대건축물의 구조 탐방
Info
주소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42-1
전화 02-3146-5921
홈페이지 arisu.seoul.go.kr/arisumuseum
한국 은행 최초의 근대건축물, 광통관
한국 은행 최초의 근대건축물,광통관
민족의 돈줄을 지키고자 했던 광통관
지금 우리나라 금융 중심지는 여의도지만 예전에는 명동이었다.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모여 있던 남대문로 일대는 일제강점기 경성의 자본이 들고 나던 경성의 월스트리트. 구한말 자국 은행을 앞세운 일본의 경제 침탈이 본격화되었고, 1899년 정부 관료와 조선인 실업가가 참여한 민족계 은행 대한천일은행을 설립했는데, 그 본점으로 광통관을 사용했다. 근처에 있는 광통교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일합병 후 대한천일은행을 조선상업은행으로 강제 변경했고, 이후 여러 번 합병을 거쳐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지점이 들어서 있다. 한국 은행 최초의 근대건축물이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본래 기능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문화재청
돔, 기둥, 난간… 서양식 건축의 화려함
현재는 주변에 다양한 고층 빌딩이 들어서 아담하게 보이지만 1909년 설립 당시에는 주변을 압도하는 위용을 드러냈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함께 사용해 선이 굵은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양쪽 날개 부분에 바로크풍 쌍돔까지 있어 화려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근대건축물을 짓기 위해 나라에서 만든 탁지부 건축소가 설계한 건축물 중 가장 정교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원형 창, 아치형 창, 벽면과 지붕의 장식 난간 등에서 100년 전 건축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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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
#은행건축
#명동산책
#종로산책
#벽돌집
#탁지부
이 건축의 묘미!
+ 바로크풍의 화려한 쌍돔
+ 건물 입면의 서양식 장식이 보여주는 화려함
+ 은행으로 출발해 여전히 맡고 있는 은행 업무
Info
주소 서울 중구 남대문로 118
전화 02-734-4491
복원보다는 상상력, 서울시립대학교 선벽원
복원보다는 상상력,서울시립대학교 선벽원
서울시립대학교의 시초인 1930년대 건물들
1937년 서울시립대학교 전신인 경성공립농업학교 시절에 건립한 건물들은 대다수 소실되고 딱 3 개만 남았다. 전시 공간이자 수장고인 경농관, 박물관, 다목적 강당인 자작마루. 건립 당시 경농관은 대학 본관, 박물관은 교실, 자자마루는 대강당으로 사용했다. 헐고 새로 짓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구조 보강 공사를 하고 리모델링하자는 결정에 이르렀다. 이 작업을 맡아 진행한 건 이충기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과 교수. “그 시절 벽돌을 나르고 쌓아서 건물을 짓던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고, 아직도 공간을 떠도는 못질과 망치 소리를 듣고,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해 지붕 틀을 짜고 창문을 만들어 끼우던 그들의 숨결과 손짓을 드러내려 했다”라고 말하는 그는 공간을 섬세하게 매만졌다.
사진 제공 이충기
사진 신경섭
벽돌은 오래되면 착해진다
‘벽돌이 오래되면 착해지고 나무가 오래되면 어질어진다’고 생각한 건축가는 이 세 건물에 ‘착한 벽돌집’이란 뜻을 담은 ‘선벽원’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난 80여 년 동안 경성공립농업학교는 서울농업초급대학, 서울산업대학, 서울시립대학교로 시대에 맞게 변모하면서 규모도 커졌다. 일제강점기 건축물로 사료적 가치를 지키면서 옛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고, 동시에 소방, 기계 설비, 전기, 단열 등 건물의 기능과 성능을 현대에 맞게 개선하는 공사가 쉽지는 않았다. 외부 벽돌을 제외하고는 원래 재료와 공간을 모두 벗겨냈다고. 외벽 청소 작업을 하고 살릴 수 있는 벽은 살리고 새롭게 쌓아야 하는 벽체는 중국 고벽돌을 수입해 사용했다. 옛것에 새것을 혼합하면서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디테일한 구분 역시 필요했다. 선벽원은 오로지 복원에 중점을 두기보다 근대건축에 상상력을 더해 지금에 맞게 다시 태어난 공간이다. 2013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