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한강 유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수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였으며, 본격적으로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로 서울시에 신석기시대 유적은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는데 이 중 강동구 암사동
유적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암사동에 가면 선사주거지 전시관이 꾸며져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집과 사용했던 물건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요. 단순히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선사시대 사냥 도구를 만들고 도토리와 곡식 등을 채집해 보는 등 다양한 선사시대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으니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이 궁금하다면 암사동 선사주거지 전시관을 방문해보세요
서울도 백제의 수도였다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백제의 수도라면 공주. 부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공주, 부여, 서울 중 가장 오랫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곳은 바로, 서울입니다.
BC18년부터 AD 475년까지 서울은 무려 500년간이나 백제의 수도였으며 성이 울타리처럼 만들어졌다는 의미의 위례성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당시 위례성의 남성인 몽촌토성과 북성인 풍납토성이 아직도 송파구 일대에 남아있습니다.
위례성은 후에 ‘큰 성’이란 뜻인 한성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으며 이때 백제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한성백제박물관과 몽촌역사관을 방문해보세요
475년 백제를 물리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는 고구려였는데, 551년 백제와 신라 연합군에게 빼앗기기 까지 76년간 한강 유역을 지배하였습니다.
한강 유역에 고구려의 흔적은 아차산 5개 보루를 포함 총 18개의 보루가 남아있습니다. 고구려의 다양한 유적이 궁금하면
아차산고구려역사문화홍보관을 방문해보세요
551년 이후 한강을 지배한 신라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국보 3호로 지정된 진흥왕순수비가
있는데 원래 북한산 비봉에 세웠으나 문화재 보존을 위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니 원형이 보고 싶으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해보세요
고려시대 수도는 개경이고 당시 서울은 양주라 불렸습니다. 이후 뛰어난 자연지리적 여건과 풍수학적 요건 때문에 ‘남경’이라는 중요 지역으로
승격되게 됩니다. 서울에 남은 가장 대표적인 고려의 흔적은 봉천동에 위치한 낙성대입니다. 낙성대는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의 집터로,
그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 하여 ‘낙성대’란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지금은 낙성대공원 안에 안국사라는 강감찬 장군의 사당을 지어
기리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는 청자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3층 조각공예관에 오시면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국보 제95호)를 비롯해 고려만의 산뜻한 조형 세계를 보여주는 ‘청자 상감
모란넝쿨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국보 제116호) 등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책속의 문화재가 아닌
살아있는 문화재를 직접 만나보세요.
1394년 태조가 한양을 새 도읍지로 지정하면서 500년 조선 도읍이 탄생했습니다.
한양은 뒤로는 산이 감싸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와 궁궐 왼쪽에 사직단을 오른쪽에
종묘를 둔 좌묘우사의 유교적 이념을 토대로 건설된 곳입니다.
가장 먼저 건설된 곳은 경복궁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불타 사라진 후 300년간 방치되다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겨우 제 모습을 찾았답니다.
경복궁이 없던 300년 동안 왕이 거주했던 곳은 창덕궁이며
창덕궁은 조선시대 왕이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궁궐이기도 합니다.
특히 300년 이상 된 나무가 100종이 넘고
연못, 정자 등이 건축물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창경궁은 임금에서 물러난 상왕이 살았던 곳으로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한데요.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든 곳이
창경궁 문정전 앞이랍니다.
경희궁의 원래 이름은 경덕궁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경희궁은 일제에 의해 전체가 해체되는 수모를 겪었는데요.
1985년 발굴을 통해 정전 등 일부가 복원되었고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으로 조선 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직후 거주했던 곳입니다.
덕수궁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문장 교대식이죠?
덕수궁, 경복궁에서는 매일 특정 시간에 수문장 교대식을 거행하고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하기를 추천합니다.
덕수궁가면 여길 꼭 들려보자!
조선말 고종은 특히 커피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던 곳이 덕수궁내 정관헌인데요.
정관헌에 앉아 왕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은 어떠세요?
육조거리란
조선시대 주요 관청이 모여 있는 곳으로 현재 광화문 앞의 대로에 해당합니다
현재 광화문 광장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임진왜란을 막아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고, 두 분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세종이야기,
충무공이야기
전시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중요 관청의 배열을 보면 광화문 앞 왼쪽 즉 동쪽 제일 앞에는 의정부가 자리잡고 그 남쪽으로 이조(吏曹)와
한성부(漢城府), 호조(戶曹)가 있었으며 오른쪽 즉 서쪽으로는 예조(禮曹)를 포함해 사헌부(司憲府), 병조(兵曹), 형조(刑曹),
공조(工曹) 등의 관아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운종가는 한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처음에는 광화문 우체국 동쪽부터 종로3가
입구까지였지만 태종 5년부터는 안국동부터 광교 일대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운종가 중심에는 종루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렸고, 양 옆으로는 여섯 곳의 큰 상점인 육의전이 있었는데요.
육의전은 서울에서 으뜸가는 시전으로 시전 중에서 특히 규모가 큰 상점을 말합니다.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을 나누듯, 조선시대에는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은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불렀습니다.
북촌에는 주로 양반이 남촌에는 가난한 선비와 서민이 거주했는데요. 현재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시면 당시 양반들의 집을
확인할 수 있고 북촌한옥마을에 가면 현대화된 한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 건국 후 한양 정도부터 개항 이전까지 조선시대의 서울을 확인할 수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을 방문해 보세요.
한양의 육조거리와 시전을 중심으로 북촌, 중촌, 남촌, 그리고 성저십리에 걸친 다양한 유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 능선을 따라 4대문과 4소문으로 된 한양도성을
만들었습니다.
4대문은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며, 4소문은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입니다.
이중 돈의문와 소의문은 사라져 현재는 터만 남아있고, 2014년 현재 전체 구간의 약 70%, 총 12.8km 구간이
남아 있거나 중건되었습니다.
4대문에는 인간이 지켜야할 5가지 기본덕목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숨어 있는데요.
각각의 성문은 다음과 같은 뜻을 품고 있답니다.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제야의 종,
“보신각(普信閣)”이 바로 신의를 넓히라는 뜻을 가진 5번째 문화재에 해당합니다.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 도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공식 등재 되었습니다.
한양도성은 하루에 다 돌아볼 수도 있지만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구간으로 나누어 걷는 것이 더 좋습니다.